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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후원한 기업들, 기억해야하는 이유
독립운동을 후원기업은 어디일까요?
독립군을 위해서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준 자랑스러운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대준 기업들이죠.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자금을 지원한 일을 들키게 되면 사업기반은 물론이고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독립자금 후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 후원한 기업들
1. LG
LG 그룹의 구인회 창업회장은 중경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1942년 7월 구인회 회장은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의 독립운동 자금 부탁에 흔쾌히 1만 원을 지원했다.
일제로부터 지명 수배를 받고 있던 안희제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준다는 것은 집안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구 창업회장은 “당할 때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 위험을 무릅쓰고 1만원의 독립 자금을 희사했다.
2. 동화약품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동화약품 초대 사장인 은포 민강 선생은 1909년 경 각계 인사 80여명과 함께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였다. 민 선생은 그가 경영하던 동화약방(現 동화약품)을 자금조달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또한 ‘대동단’이라는 항일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해 활동할 때는 동화약방을 대동단의 연락 거점으로 제공했다. 민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단체들의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는 ‘서울 연통부’를 운영하기도 했다. 동화약품 사옥 앞에는 지금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3. 유한양행
유한양행의 창립자는 독립운동가인 유일한 박사다.
유일한 박사는 14세이던 1909년, 박용만이 네브래스카 해스팅스에 독립군 양성을 위해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했다.
유 박사는 이후 꾸준하게 독립운동을 펼쳐왔으며 1945년에는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토 수복작전인 내보작전 1조 조장으로 무기, 비무장 전투법, 지도 읽기, 무전 등 특수훈련을 받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그 정신을 이어 유한재단은 지난 2014년부터 생활고를 겪는 독립유공자 후손 300여 가구에 월 12만원씩 연간 4억원 규모를 지원해 오고 있다.
4. 교보생명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전형적인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지난 1993년 교보와 첫 인연을 맺었다.
창립자 신용호 회장의 큰 아들인 그는 “굶주린 아이들을 가르쳐야 국가의 미래도 있다”는 부친의 뜻을 받들기로 한 것.조부인 신예범 선생은 물론, 큰아버지 용국·용율씨 등 대부분의 선친들이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작은아버지 신용희 전 회장은 1967년 교보생명 창립 공신으로 30여년간 몸담은 교보생명 산증인.
5. GS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증조부인 지신정 허준 선생은경주 최 부자로 알려진 최준과 함께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이 만주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백산상회’의 자본금을 댔다.
참고로 '백산상회'는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가량을 지원했던 곳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영리 기관으로 가장했으나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및 자금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돈벌이 대신 민족을 선택한 기업과 비선실세에게 자금을 지원한 기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업을 기억해야할까요?